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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사람들

1980년대

2021.01.06 13:06

김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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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1953년~1986년
당시 33세
약력 1986년 3월 10일 영등포에서 불심검문에 항의하다가 연행

1986년 5월 26일 식물인간으로 투병생활 중 운명

1990년 12월 민사소송에서 경찰의 유죄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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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원 열사는 1953517일 전남 영광에서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사와 서부이촌동에서 야학을 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선반 공장 등에서 일하고 25살 때부터는 도장공으로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다.

 

평소 노동법 해설책을 읽고 다닐 정도로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었으며 도시산업선교회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86310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당시 영등포 산업선교회에 집결해 있던 노동자들이 영등포로터리까지 진출해 벌이던 대규모 노동자 가두시위 직후 경찰관들이 비상 순찰 중이던 상황에서, 집으로 가던 중 불심검문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중앙파출소로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중앙파출소에서 그곳 소속 경찰관들로부터 전신을 폭행 당하여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식물인간이 되었다, 영등포 경찰서는 열사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고 이를 감추기 위해 영등포 시립병원에 행려환자로 거짓 보고하여 입원시켰다.

 

영등포경찰서 및 중앙파출소 경찰관들의 철저하고도 조직적인 은폐 아래, 중환자실에서 77일간을 신음하다 198652633세의 젊은 나이로 운명하였다.

 

 

199012월 민사소송에서 경찰의 유죄가 인정 이후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이 사건이 철저히 은폐되었으며, 공권력에 의하여 사망한 진실이 밝혀졌다.

다시는 이땅에 열사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한 설명

195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문제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개신교단체.   산선.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시산업선교회(都市産業宣敎會))]

 

정의 

195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문제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개신교단체.산선.

키워드

민주노조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동일방직

가톨릭노동청년회

 

  개설

개신교의 산업선교 단체를 총칭하여 도시산업선교회라고 한다. 산업선교회는 1970년대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과 직장인, 노동자들의 선교와 교양 교육,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70년대 노동자들의 소모임 구성,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건설을 지원하였으며, 민주화운동을 진행하였다.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는 가톨릭노동청년회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이다.

 

  연원 및 변천

1950년대 말 미국 선교사들의 주도로 개신교의 산업전도가 시작되었고, 1968년 산업선교로 활동 방향을 전환하였다. 산업전도 초기에는 노동자, 기업가 모두를 대상으로 전교, 봉사활동을 전개하였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선교사와 목사 등은 노동자의 삶의 현실에 참여하면서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민주노조 건설을 지원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도시산업선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의 교단별 산업선교회는 1971년 ‘한국도시산업선교연합회’를 구성하였다.

유신 독재시기가 되면서 도시산업선교회는 그 동안 협조 관계를 유지하던 한국노총이 유신 독재를 지지하자 관계를 단절하고 본격적으로 민주노조운동 지원을 벌였다. 도시산업선교회의 노동자 교양 교육과 조직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소모임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노동자들은 정부, 사측으로부터 법적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상황에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의식을 성숙시켜나갔다.

19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가 지원한 주요 노동쟁의, 민주노조 건설 사례로는 한국모방, 반도상사, 동일방직, 대일화학, 해태제과, 동남전기 등이 있다. 이런 산업선교 과정에서 인천산선, 영등포산선 등의 목사, 실무자, 노동자들이 구속, 고문, 해고 등을 당하였다. 도시산업선교회는 1980년대 신군부의 노동운동 탄압과 노동운동의 성장으로 노동자 지원 활동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 지원활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시산업선교회(都市産業宣敎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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